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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road/2014 아일랜드

새로운(?) 경험 - Airport Medical Center

이번 아일랜드 여행은 에미레이트 항공과 함께 했다. 2층으로 설계된 A380 기종이 워낙 좋다는 소리를 들어서 이코노미지만 그래도 나름 쾌적하게 다녀올 수 있겠지 라는 기대와 함께, 두바이 경유 3시간 정도하는 걸로 예약을 했었다.





기내 좌석에 앉아보니 다른 항공기에 비해 무릎 앞 공간이 좀 넓어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승무원들도 친절해서 상쾌한 기분으로 출발했다. 이 때만 해도 잠시 후 벌어질 일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문제는 요 기내식을 먹은 후 발생했다. 맵다고 하지만 전혀 맵지 않은 따뜻한 닭고기와 데친 시금치, 그리고 감자와 새우가 들어간 찬 샐러드. 영화를 보며 기내식을 먹고 잠이 든 나와는 달리 동생은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명치 쪽 통증을 호소하며 불편하게 앉아 가고 있었다. 평소 배가 자주 아픈 동생이라 챙겨간 상비약을 먹고 나면 잦아들겠지 생각했는데 복통은 가시질 않고 몇 시간이나 계속 됐다.


동생은 승무원을 찾아가 내가 지금 너무 아프다 라고 증상을 알렸다. 에미레이트 항공 승무원들은 자리가 추워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자신들이 있는 공간에 동생을 앉히고 패트병에 뜨거운 물을 담아 배에 댈 수 있게 하고 소화제 기능이 있는 씹어먹는 약을 주고 경과를 지켜봤다. 그런데도 복통이 쉽사리 가시질 않자 항공기 내 의료 담당 승무원이 와서 혈압을 재고 산소포화도(?) 같은 걸 재면서 지상에 있는 의료진들과 통화를 하며 동생의 증상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환자의 상태를 좀 더 정확히 알려 의료진이 처방한 약을 주기 위함이다. 근데, 처방한 약을 먹고 한 시간 정도 지난 후 상태를 확인해보고 진전이 없을 경우에는 환승 공항에서 전문의를 만나 진료를 받고 확인을 받아야만 다음 비행기를 탈 수 있다고 한다. 헐, 뭐라고? 환승 시간이 3시간 정도 밖에 안되는데 진료 받다가 환승 시간 놓치면 어쩌지? 만약에 비행기를 놓치게 되면 어떻게 되냐, 그 다음 비행기를 탈 수 있게 해주는 거냐, 진료비 부담은 누가 하는거냐 등등.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해 오면서 이를 어찌해야 하나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동생이 배가 많이 아프긴 하지만 의료진을 만나도 친구가 있는 아일랜드면 몰라도 두바이라니... 그렇지만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이미 승객 명단에서 동생은 아프다는 기록이 남아서 문제 발생 시 항공사의 책임도 있는거라 확인 없이 다음 비행기에 탑승 시킬 순 없다는 것. 그치, 그게 맞긴 하지 흠....





1시간 뒤 통증이 말끔히 사라지길 기대했지만 차도는 별로 보이질 않았고, 그렇게 항공기는 두바이에 도착했다.

방송이 나왔다. 지금 공항 의료진이 도착했으니 승객들은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그리고선 승무원들이 나와 동생을 먼저 내리게 했다. 항공기 문을 나서니 119 부르면 오는 이동침대를 끌고 의료진들이 대기하고 있다. 동생은 그걸 타고 우리는 두바이 에어포트 메디컬 센터로 이동했다. 비행기 여러번 타봤지만 이런데 와보긴 처음이다. 아니, 처음이자 마지막이어야겠지!

들어가니 의사 선생님 같은 분이 기다리고 있고 혈압과 당 검사를 했다. 검사 수치는 정상이고, 이런 저런 질문에 모두 이상 없다는 대답을 하니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왜 왔지 라는 표정을 보였다. 복통만 있고 설사나 구토가 없었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는 없다고 판단하여 이 승객은 탑승에 문제없음 이라는 뜻인 것 같은 증명서에 사인을 해서 우리에게 내줬다.

사실 항공기 안에서는 한국인 승무원이 있어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었는데 두바이에 내려서부터는 한국인 스피커가 없었기 때문에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건지 뭔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괜찮은거냐, 문제 없는거냐, 끝난거냐를 몇 번 물어보고 난 후 우리는 별도의 보안검색대를 지나 환승 게이트까지 안내받아 이동했다.





동생의 상태는 아직도 좋진 않았지만 그래도 처음보다는 많이 좋아져서 두바이의 희한한 스타벅스 간판을 보고 사진을 찍는 여유도 보였다. 다행히 이 모든 과정은 한 30분 만에 이루어졌고, 환승한 비행기에서 동생은 별 이상없이 더블린까지 도착했다.


Airport Medical Center.

지금은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라, 이런 경험 언제 해보겠어 하지만 앞으로 해외 여행 시 비행기에서는 어딘가 아플 때 쉽사리 승무원에게 알리지 말아야겠다 라는 생각도 든다. 동생의 경우는 잠시 탈이 났던 것 같기 때문. 물론 심각한 상황인데도 숨기면 안되겠지만 말이다.


10일 간의 여행동안 동생은 잘 먹고 잘 다니고 아무 이상 없이 무사히 한국에 함께 복귀했다.

여행지의 새로운 기운은 아픈 것도 낫게 하는 힘이 있나보다.